국내선 하늘길이 좁아지고 있다. 고유가에 등골이 휜 항공사들이 돈 안 되는 국내선을 접고 수익성 높은 국제선으로 일제히 항공기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슬롯(특정 시간대 공항 이착륙 권리)을 넘겨받은 저비용항공사(LCC)들마저 손을 놓으면서 김포~제주 등 주요 노선은 표조차 구하기 힘든 지경이다.
5일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선 운항 공급석은 1652만석으로 집계됐다. 이는 3년 전인 2023년 상반기 1812만석 대비 159만4757석(8.8%) 감소한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국적 항공사의 국제선 공급석은 2023년 상반기 2459만석에서 올해 3953만석으로 60.8% 급증했다.
항공사별로는 LCC의 국내선 축소가 두드러졌다. 3년 전과 비교해 티웨이항공은 23.1% 줄었다. 에어부산과 진에어 역시 각각 20.6%와 14.8% 감소했다. 대형항공사(FSC)인 아시아나항공은 16.8% 줄었고 대한항공은 3.9%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선 총 공급석은 작년 동기 대비로는 2.2% 소폭 늘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항공기 화재와 정비 지연 등으로 국내선을 대폭 감편했던 에어부산이 올해 55만8000석을 늘린 데 따른 기저 효과로 분석된다.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항공사는 올해도 작년보다 국내선을 대거 줄였다.
항공사들이 국내선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유가에 따른 수익성 악화다. 국내선은 비행 시간이 짧아 연료 소모는 적지만 좌석당 운임이 낮다. KTX나 고속버스 등 대체 수단과 경쟁해야 해 요금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반면 미주나 유럽 등 장거리 국제선은 여객 운임이 높고 화물 수익까지 더해져 수익률이 월등히 높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올해 2분기 연료비는 전년 대비 1조원 이상 늘어났다. 이에 매출 기여도가 4%에 불과한 국내선 운항을 줄이고 여기서 확보한 항공기를 미주 등 고수익 국제선에 재배치한다는 전략이다. 대한항공 측은 지난달 진행된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여객 중에서도 국내선은 유가가 많이 오른 만큼 내부 비상 경영 기조에 맞춰 수익성이 낮은 운항편의 공급을 계속 축소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선 공급 감소에는 LCC들의 소극적인 움직임도 한몫했다. 티웨이항공은 4~5월 김포~제주 노선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에 따른 슬롯 재배정으로 61편을 추가 확보했다. 하지만 실제 운항 편수는 지난해 850편에서 올해 790편으로 오히려 60편 순감했다.
이스타항공 역시 하루 6개 슬롯을 받아 366편 증편 여력이 생겼지만 4~5월 실제 운항은 180편에 그쳤다. 애초 대한항공 슬롯을 재배분한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국내선 공급 급감에 따른 지역민 이동권 보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LCC들이 고유가를 핑계로 국토부에 제출한 제주~김포 운항 계획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4~6월 제주~김포 운항 편수는 9584편으로 전년 동기 1만164편 대비 580편 감소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유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단가가 낮고 대체 교통수단이 많은 국내선에 항공기를 투입할수록 손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며 “국내선 슬롯을 추가 확보한 LCC들도 수익성이 높은 국제선에 기재를 우선 배정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선 좌석난이 심화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부는 지난해보다 국내선 운항을 늘리는 항공사에 대해 착륙료를 면제하고 제주공항 슬롯을 국제선보다 국내선에 우선 배정하는 등 단기적인 증편 유도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항공업계에서는 규제 위주 대응만으로는 국내선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LCC 고위 관계자는 “항공당국이 아무리 압박해도 돈이 되지 않는 노선에 항공기를 띄우긴 어렵다”며 “고유가 국면에서 국내선을 유지하려면 페널티보다 유류비 지원이나 착륙료 감면 확대 같은 확실한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