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속·증여를 앞둔 대주주의 ‘주가 누르기’를 막기 위해 상장주식 평가 방식을 강화했지만, 적용 요건이 지나치게 좁아 상당수 저평가 기업이 규제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업종별 상대평가와 6년이 넘는 장기 기준을 함께 적용하면서 정작 기업가치를 오랜 기간 훼손한 기업을 걸러내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4일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논평을 통해 정부가 전날 발표한 주가 누르기 상장주식 평가방법 개선안에 대해 “자본시장 정상화라는 정책 목표에 비해 크게 미흡하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 회장은 “정부안이 수많은 저PBR(주가순자산비율)기업에 사실상 면죄부를 줄 수 있다”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안은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동안 PBR이 업종별 하위 25%에 속한 코스피 상장사와 하위 10%에 포함된 코스닥 상장사를 주가 누르기 추정 대상으로 분류한다. 대상 기업은 상속·증여세를 산정할 때 최근 6년6개월간 평균 주가와 현행 평가액의 1.3배 가운데 높은 금액을 적용받는다.
이 회장이 먼저 꼽은 문제는 업종별 상대평가 방식이다. 국내 상장사를 글로벌산업분류기준(GICS) 11개 업종으로 나눈 뒤 각 업종 최하위 기업만 선별하면, 업종 전체가 저평가된 산업에서는 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조차 규제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보기술을 제외한 국내 주요 업종의 PBR 중위값이 대부분 1배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체 시장이 아닌 업종별 하위 기업만 겨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포럼과 얼라인파트너스가 최근 실적과 주가를 기준으로 추정한 결과 첫 번째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은 코스피 84~87곳, 코스닥 43곳 등 약 130곳에 그쳤다. 대상 기업의 평균 PBR은 코스피 0.27배, 코스닥 0.29배였고 평균 시가총액은 각각 5557억원과 1173억원으로 집계됐다. 롯데지주와 GS, DL, 태광산업, 한화생명, 대신증권, 이마트 등이 명단에 올랐지만 상당수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분석됐다.
6년6개월에 이르는 판정 기간 역시 회피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지배주주가 장기간 승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반기에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 주가 부양책을 집중적으로 발표하면 ‘13개 반기 중 12개 반기’라는 기준을 손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10~20년에 걸쳐 승계 계획을 세우는 지배주주에게 두 차례 정도 PBR 순위를 끌어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평가액을 현행 방식보다 30% 높이는 방안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코스피 대상 기업의 평균 PBR 0.27배에 30%를 할증해도 평가 수준은 0.35배에 불과해, 순자산가치의 3분의 1 수준에서 상속·증여가 이뤄질 수 있다. 오히려 장기간 주가를 낮게 유지할수록 과거 평균 주가까지 함께 내려가는 만큼, 지배주주에게 주가 억제 유인을 되레 키워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 회장은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것은 업종과 관계없이 시장가치가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라며 “상장기업의 이사회는 투자와 연구개발, 배당, 자사주 정책 등을 통해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높일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포럼은 주가 누르기를 실질적으로 막으려면 업종별 최하위 기업만 선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속·증여 시점 전후의 배당 축소와 자사주 활용, 중복상장, 교환사채 발행 등 지배주주의 구체적인 행위와 주가 영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